헌재 결정 전에 스스로 위헌 단정한 2심... 대법원 "제동"
의료급여비용 지급보류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심 파기환송
법원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법률을 위헌으로 전제해 행정처분을 취소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뉴스1 보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7일 이러한 취지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A 의료법인이 목포시장을 상대로 낸 의료급여비용 지급보류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목포 사무장병원 수사, 지급보류 처분으로 이어져
논란은 목포에서 벌어진 사무장병원 사건에서 시작됐습니다. 목포시장은 2019년 11월 경찰로부터 수사 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비의료인인 부부가 A 법인을 세워 개인 소유처럼 지배하면서 요양병원 등 4개 의료기관을 운영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목포시장은 2020년 1월 구 의료급여법에 따라 A 법인에 대한 의료급여비용 지급보류처분을 내렸습니다.
당시 조항은 유죄가 확정되기 전이라도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로 사무장병원임이 확인되면 급여비용 지급을 묶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A 법인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습니다. 부부는 2020년 8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별도로 형사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1심 패소, 2심은 유사 조항 헌재 결정 근거로 위헌 판단
2020년 11월 1심은 A 법인 패소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2심은 해당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 조항이라고 보고 처분을 취소했습니다.
2심 판단의 배경에는 헌재의 다른 결정이 있었습니다. 2심 진행 당시 헌재는 건강보험 진료비를 대상으로 한 국민건강보험법상 지급보류 조항이 요양기관 개설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2심은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국민건강보험법 조항이 이 사건 의료급여법 조항과 사실상 같다고 봤습니다. 지급보류의 사유와 절차, 법조문 내용과 형식이 모두 유사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헌재 판단을 이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문제는 이 사건에 실제로 적용되는 의료급여법 조항에 대한 헌재 결정이 원심 당시에는 나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헌재는 원심 선고 이후인 2024년 6월에야 구 의료급여법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법원 "위헌 판단은 헌재의 몫"... 다만 부부 무죄 확정으로 처분은 취소돼야
대법원은 헌재 결정의 효력이 이 사건에 소급 적용되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처분을 취소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헌재가 위헌으로 본 부분은 무죄로 밝혀졌을 때 묶어둔 돈을 돌려주는 절차가 없다는 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사 결과를 근거로 지급을 보류하는 것 자체는 헌재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2024년 7월 비의료인 부부의 의료법 위반 혐의 무죄가 확정된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이에 따라 목포시장은 개정 의료급여법에 따라 이 사건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지급 보류된 급여비용에 보류 기간 이자를 가산해 A 법인에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법원으로서는 재판에 적용될 법률조항이 위헌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할 수 있을 뿐, 스스로 그 법률조항이 위헌임을 전제로 재판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하급심의 위헌 전제 재판 관행에 제동
이번 판결은 하급심이 유사 법률에 대한 헌재 결정을 근거로 다른 법률 조항까지 위헌으로 단정해 재판하는 흐름에 명확한 제동을 걸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위헌법률심판제청 절차를 거치지 않은 위헌 전제 재판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따라서 유사하거나 병렬 관계에 있는 조항에 대한 헌재 결정이 나와 있더라도, 실제 사건에 적용되는 조항 자체에 대한 헌재 판단이 없다면 해당 조항의 유효성을 전제로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또한 이번 판결은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살펴야 한다는 점을 확인시켜 줍니다. 조항 전부가 아니라 절차의 흠결(무죄 확정 시 반환 절차 부재)이 위헌 사유였던 만큼, 헌재 결정의 소급효만으로 처분 자체가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는 실무 기준이 제시된 것입니다.